“이게 SUV 맞나?”…서킷 첫 바퀴에서 느낀 이질감
코너에서 드러난 진짜 실력, 액티브 라이드는 ‘반칙’
전기차 시대, 포르쉐는 여전히 포르쉐다
30일 이른 아침, 용인 스피드웨이 피트레인에 들어서자마자 시선이 멈췄다. 줄지어 서 있는 차량들 사이에서도 단번에 존재감을 드러낸 건 포르쉐 카이엔 터보 일렉트릭이었다. ‘이게 SUV 맞나?’라는 질문은 시동을 걸기도 전에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리고 그 의문은 이내 확신으로 바뀌게 된다. 이번 행사는 단순한 시승이 아니었다. 차를 타기 전에 먼저 ‘이해하는 시간’이 주어졌다. 독일 본사 엔지니어들이 직접 설명하는 워크샵에서는 이 차가 단순히 빠른 전기 SUV가 아니라, 800V 고전압 시스템과 액티브 섀시, 그리고 정교한 열관리 시스템이 하나로 결합된 퍼포먼스 플랫폼이라는 점이 강조됐다. 특히 “왜 트랙에서도 성능이 유지되는가”에 대한 설명은 인상적이었다. 이론을 머릿속에 넣고 트랙으로 나가는 순간, 오늘 경험은 단순 시승이 아니라 기술을 검증하는 과정이 된다. 헬멧을 쓰고 운전석에 앉아 가속 페달을 밟는 순간, 예상은 완전히 빗나간다. 전기차 특유의 즉각적인 반응은 익숙했지만, 이 차의 가속은 그 이상의 영역이다. 깊게 밟는 만큼 지체 없이 터져 나오는 힘, 그리고 고속에서도 전혀 꺾이지 않는 밀어붙임. 직선 구간이 짧게 느껴질 정도로 속도가 순식간에 쌓인다. 그런데도 불안하지 않다. 감속 구간에서 브레이크를 밟으면 차는 무겁게 주저앉기보다 단단하게 버티며 속도를 지운다. 회생제동과 기계식 브레이크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며, 제동 자체가 하나의 완성된 동작처럼 느껴진다. ‘통제된 빠름’이라는 표현이 가장 잘 어울린다. 첫 번째 고속 코너에 진입하는 순간, 이 차의 진짜 실력이 드러난다. 덩치 큰 SUV라는 사실이 무색하게 차체는 거의 기울지 않는다. 스티어링을 꺾는 순간 앞머리는 정확히 라인을 파고들고, 뒤는 지체 없이 따라온다. 일반 SUV라면 롤이 발생하고 한 템포 늦게 반응할 상황에서도, 이 차는 물리적인 한계를 거부하는 듯한 움직임을 보여준다. 포르쉐 액티브 라이드가 차체를 수평으로 유지하며 롤과 피치를 적극적으로 억제하고, 리어 액슬 스티어링은 회전 반경을 줄이며 차를 코너 안쪽으로 밀어 넣는다. 그 결과 코너 진입 속도를 자연스럽게 끌어올릴 수 있고, 탈출 시에도 불안감 없이 가속을 이어갈 수 있다. 말 그대로 ‘반칙’ 같은 움직임이다. 짐카나 코스에 들어서자 이 차의 또 다른 얼굴이 드러난다. 1,156마력의 힘은 짧은 직선에서도 폭발적으로 속도를 끌어올리고, 급격한 방향 전환이 이어지는 상황에서도 차체는 놀라울 정도로 차분하게 움직인다. 스티어링을 빠르게 좌우로 꺾어도 반응은 즉각적이고, 차는 과하게 흔들리지 않는다. 차는 수평으로 이동할 뿐이고, 오히려 탑승자만 좌우로 쏠릴 정도다. 급가속, 급제동, 급코너를 반복해도 흐트러짐 없는 움직임은 액티브 라이드를 중심으로 한 섀시 제어 기술이 얼마나 정교한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스포츠 플러스 모드로 전환하고 ‘푸시 투 패스’를 활성화하면, 순간적으로 더 강해진 출력이 차를 앞으로 튕겨내듯 밀어낸다. 덩치에 대한 부담은 완전히 사라지고, 오히려 가벼운 스포츠카를 다루는 듯한 리듬감이 살아난다.여러 바퀴를 반복하며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성능의 ‘지속성’이었다. 일반적인 고성능 전기차라면 열로 인해 출력이 제한될 법한 상황에서도 이 차는 처음과 거의 동일한 퍼포먼스를 유지한다. 워크샵에서 들었던 열관리 시스템의 중요성이 그대로 체감되는 순간이다. 배터리 온도를 능동적으로 제어하며 최적 상태를 유지하기 때문에, 반복 주행에서도 퍼포먼스가 무너지지 않는다. 단순히 빠른 차가 아니라, 계속해서 빠를 수 있는 차다. 그리고 서킷을 벗어나자 또 한 번 놀라게 된다. 컴포트 모드로 전환하는 순간, 방금 전까지 트랙을 질주하던 차가 맞나 싶을 정도로 성격이 부드럽게 바뀐다. 노면의 잔진동은 대부분 걸러지고, 차체는 안정적으로 떠 있는 듯한 느낌을 만든다. 액티브 라이드 시스템은 차체를 수평으로 유지하면서도 탑승자에게 전달되는 충격을 최소화한다. 긴장감으로 가득했던 서킷의 감각이 자연스럽게 풀리며, 이 차가 일상에서도 충분히 편안한 존재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결국 이날 경험은 하나의 흐름이었다. 기술을 먼저 이해하고, 트랙에서 그것을 확인하고, 짐카나에서 한계를 시험하고, 마지막으로 일상에서의 균형을 느끼는 과정. 이 모든 과정이 이어지며 이 차가 단순한 전기 SUV가 아니라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납득하게 만든다.서킷 주행을 마치고 차에서 내리는 순간, 머릿속에 남은 건 숫자나 스펙이 아니었다. 전기차 시대에도 여전히 ‘운전의 감각’을 중심에 두고 있는 브랜드의 방식, 그리고 그 결과물에 대한 확신이었다. "전기 시대에도 변함없이 완성된 포르쉐다"임재범기자 happyyjb@naver.com